김은희 성폭행 폭로
'체육계 미투'를 처음 시작한 테니스 김은희 코치가 1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테니스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17년 10월 13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심 판결에서 열 살이었던 나를 수차례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죠. 주변에서는 "이겨서 축하한다"고 하는데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참 울었습니다. 어린 김은희가 불쌍하고 가여워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후에도 법정 공방은 계속됐습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10년의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꼬박 2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냐고요? 어떤 단어로도 표현을 잘 안될 것 같아요. 수면장애, 불안, 악몽, 소화장애… 수면제를 먹고 겨우 잠에 들어도 아침마다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가 그랬던 것처럼 고통을 받고 있는 체육계 선후배, 동료들이 있겠죠. 그래서 제가 어떻게 용기를 내고, 승소할 수 있었는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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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1년부터 이듬해까지 강원 철원군의 초등학교 테니스부 코치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코치는 "죽을 때까지 너랑 나만 아는 거다. 말하면 보복할 거다"라고 협박했죠. 배가 아프고 출혈이 났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저는 그게 성폭행이라는 사실 자체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걸 알고 15년이 지나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체육계 미투'를 처음 시작한 테니스 김은희 코치가 1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테니스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실질적인 도움을 준 건,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테니스협회 등 체육계 관계 단체들이 아니었습니다. 신고센터 담당자와 연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문체부 조사관은 성범죄에 관련한 단어도 잘 모르고 있었죠. 반면에 일반 성폭행 상담소인 여성의 전화, 해바라기 센터 등은 전문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편에 서서 지원을 해줬습니다.
체육 관계 기관들은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있는 중립적인 기관이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명히 체육 관계 기관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피해자를 위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 성폭행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단독] '체육계 미투 시작' 김은희 "가해자는 죄의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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